2XX8년 12월 26일 (무경의 글)

2XX8년 12월 26일

 

 

  오늘 우주 정거장에서 아침과 저녁, 두 번의 전파 송신을 받았습니다.


  지구에서 보내오는 소식은 여전히 일정할 뿐입니다. 창 너머로 보이는 지구는 잿빛 구름 껍질로 뒤덮여 파란 속살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 속에 사람은 아직도 살아 있는 걸까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메시지의 시작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4악장, ‘환희의 송가’입니다. 뭐가 환희인 건지. 똑같은 부분을 똑같은 녹음으로 일 년이 넘도록 매일같이 들어 보란 말입니다. 이제 나는 누가 지휘하는 건지도 모를 그 노래를 정확하게 외우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3초만 집중하면 됩니다. 그러면 뇌가 알아서 그 가락을, 바리톤과 테너, 소프라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재생시켜 줘요.


   오늘 받은 전파 송신도 컴퓨터가 입력된 프로그래밍에 맞춰서 보낸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똑같은 노래를, 똑같은 환희만을 외치며 살다니. 이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라고 생각되지 않나요. 분명 그런 노래를 부르도록, 그리고 그런 노래를 전송하도록, 그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도록 입력된 컴퓨터가 저 잿빛 구름 너머의 관제탑에 있을 거에요. 그러니 컴퓨터여, 제발 부탁이니 다른 노래를 전송해 주면 좋겠는데. 아니, 같은 노래라도 상관없어요. 심지어 같은 녹음 판본이라도 좋아요. 제발, 제발 부탁이니 다른 대목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밝은 노래를 틀어주세요. 아니, 그게 싫다면, 차라리 틀지라도 말아 주세요. 그러면 난 완전히 체념해 버리고, 완전히 고립될 수 있으니까요.
 

  밖으로 보이는 세상, 내가 발 디디고 있어야 할 저 땅은 언제나 칙칙한 잿빛일 뿐이에요. 거기에 영광스런 햇살 따위는 뚫고 들어갈 생각조차 못하고 있어요. 저 잿빛 구름 너머로, 똑같은 환희의 송가를 트는 컴퓨터가 우뚝 서 있는 저 땅에, 누군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걸까요? 나는 그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똑같은 노래만 되풀이하는 전파 송신을 차마 끄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결국 이런 기록을 남기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종이는 무한정하지 않아요. 이 수첩 한 권이 전부. 한 페이지에 모든 기록을 남기려면 엄청 작게 글씨를 써야 합니다. 하지만, 하루에 한 페이지라 해도, 그 페이지 중에서 과연 여백이 없이 빽빽한 페이지는 과연 몇 개나 될까요. 솔직히, 하루에 두 줄이라도 넘기는 페이지가 태반이 아닐까요. 언제나 똑같은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전혀 환희와 기쁨에 차 있지 않은 매일을 우주 정거장 속에서 살아가겠지요. 그런 매일이 계속되면 두 줄이라도 기록을 남길 수 있기는 한 걸까요.


  얼마 전, 문득 이상한 송신이 들어왔습니다. 아, 그것은, 내 착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외로움과 절망감이 낳은 환청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지직거리는 잡음이 심했지만, 그것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눈......이......온다......"


  그래서 나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이 우주정거장에서의 언제나와 같은 삶, 전혀 변할 것 없는 잿빛 구름 세상 너머에 대해 쓰기로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저 보기 싫은 잿빛 구름이 모두 눈으로 변해 세상에 내려오고, 그래서 맑아진 푸른 하늘을 사이에 두고, 나는 지구에서 눈이 온다고 외친 그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은 우주에서 지구를 외로이 지켜본 나를 발견하는, 어쩌면 정말로 금방일지도 모를 그 날을 말입니다. 그 날은 환상으로만 존재하지 않기를, 나는 그저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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