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XX8년 12월 30일 (무경의 글)

2XX8년 12월 30일


 

  오늘 우주정거장에서는 점심에 한 번의 전파 송신을 받았습니다.


 

  무척 우울한 기분이에요. 간만에 다른 이들과 기나긴 대화를 주고받으려고 했는데, 대화가 끝나고 났더니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후회가 될 정도로 말이죠.



  피아니스트 씨와의 대화는 조금 어렵게 이루어졌습니다. 이쪽 장비의 문제인지, 저쪽 장비의 문제인지, 그것도 아니면 외부의 다른 간섭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만, 계속 대화 중간에 지지직 거리는 노이즈가 끼어들었거든요. 그래서 몇 번이나 대화를 중단하고 다시 주파수 대역을 조정하는 귀찮은 작업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어렵게 대화를 하게 된 보람은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 씨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말야, ‘관측자’ 선생의 주파수 알아? 어제 그 쪽의 전파를 받았어. 얼마나 반갑던지. 이야기를 듣는 저 역시 무척 반가웠습니다. 와, 잘 지내고 계시대요? 거의 1년만에 연락이 닿은 거잖아요. 어찌 지내시려나? 내 말에 피아니스트 씨는 주파수 대역 하나를 알려주었습니다. 나중에 이리로 연락해 봐. 막내가 연락해 주면 무척이나 좋아할 걸.



  아, 저는 여기서 ‘막내’로 불리곤 합니다. 지구에 회색 구름이 덮이기 전,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우주에 보내진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모두와 연락을 주고받던 당시, 저는 특별히 별명 같은 걸 받지 않고 있었어요. 별명은 막내가 막내가 아니게 될 때, 사람들이 붙여주는 것이 우주정거장과 인공위성들의 관례였습니다. ‘경제학자’나 ‘피아니스트’ 같은 거 말이죠. 그러나 지구에 덮인 회색 구름 때문에, 저는 언제까지나 막내로 남을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더더욱 우울해지네요. 괜히 눈물이 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연락하지는 마. 피아니스트 씨가 뭔가 생각이 난 듯 덧붙였습니다. 지금은 관측자 선생이 바쁜 모양이야. 저 구름 아래에서 뭔가를 관측중인 모양이야. 음, 뭐라더라, 구름 아래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미세하게 보인다는 거 같던데.



  관측자 씨의 인공위성은 무척 정교하고 미세한 관측이 가능한 강력한 장비로 무장된 물건이라고 합니다. 관측자 씨는 그 장비들을 가지고 지구의 회색 구름 너머로 뭔가를 본 모양입니다. 내 눈으로는 그저 회색 구름밖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죠.



  번쩍이는 섬광이요? 내 물음에 피아니스트 씨는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뭘까요? 글쎄. 하지만 우주에서 보일 정도로, 그것도 저 구름을 뚫을 정도로 밝은 빛이라면……. 무슨 무기 종류가 아닐까. 울적한 말투로 피아니스트 씨는 말했습니다.



  통신을 종료하기 전 어제 들었던 연락을 떠올렸습니다. 아, 잠깐만요. 경제학자가 전해달라는 말이 있었어요. 31일에 캔들을 켜자고, 그러면 혹 지구에서도 우리를 발견할지도 모른다고요. 이 이야기, 주파수를 알고 계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피아니스트 씨는, 생각해 볼게, 라고 말하고는 통신을 종료했습니다.



  그 다음에 연결을 한 수도승 씨에게는 곧바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수도승 씨는 잠시 침묵했습니다. 통신이 끊긴 줄 알고 허둥지둥 기계를 다시 만져보았을 정도로, 그 침묵은 길었습니다.



  캔들을 동시에 켠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거지? 수도승 씨가 말했습니다. 이봐, 막내야. 내가 네 주파수를 발견하기 전에 말이다, 내가 알아낸 다른 주파수 대역의 사람들과 연락을 취해서 동시에 지구 관제탑을 향해 구조요청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었단다. 동시에 전파를 보내면 그 중 하나라도 닿을 거라고 믿었던 거지. 그래서 우리는 몇 달 동안 줄기차게 메시지를 보냈단다. 많은 이들이 동시에 전파를 저기 지구로 보냈어. 하지만, 하지만 아무 것도 달라진게 없어. 구름은 여전히 두껍고, 관제탑에서 오는 통신은 바뀔 생각을 않아. 우리는 여기서 잊혀진 게 아닐까. 우리는 더 이상 저 아래에서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혹은 저 아래에는 우리를 필요로 할지도 모를 이들이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아무 것도 바뀌지 않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아. 우리는 그저 여기서 저 회색 구름을 보면서 우울해 할 뿐이야.



  하지만, 하지만! 나는 뭔가를 더 이야기해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통신이 끊어졌습니다. 나는 관측자 씨가 지구에서 발견했다는 빛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그 빛이 보인다면, 우리가 모은 빛도 구름 너머에서 누군가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그리고 저는 제가 들은 눈 소식도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누군가 아직도 저 너머에서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더 이상 통신이 연결되지는 않았어요.
 

  나는 무척 우울합니다. 지구는 회색이고,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