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XX9년 1월 8일 (무경의 글)

2XX9년 1월 8일

 


  오늘 우주정거장에서 아침과 점심, 두 번의 전파 송신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의 전파 송신이 왔을 때, 왠지 오늘은 거기서 끝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저 감일 뿐입니다. 평소에 감이 좋다는 말을 들었었지만, 그래도 그 감을 믿고 산 적은 없었는데 말이죠. 오늘은 이상하게도 그 감을 따라서 움직이고픈 맘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 정거장이라는 이 고립된 좁은 공간에서 할 일은 없었습니다. 이곳은 지독히도 취미를 가질 수 없는 곳입니다. 놀이용 도구는커녕, 최소한의 생활 유지를 위한 도구 이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심지어는 의식주를 취미로 삼을 수도 없습니다. 가령 이불보나 베게, 혹은 인형 같은 것을 놓거나 하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것을 싣고 올 만큼 우주 정거장이 넉넉한 곳은 아니거든요. 수면을 위한 도구는 무척 간결하고 무기질적이라서, 아무리 괴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해도 거기에 정을 붙일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옷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옷, 새로운 패션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곳의 옷은 첫째도 생존, 둘째도 안전입니다. 착용과 탈의의 간소함과 최대한의 안전 보장이 가장 큰 목적인 마당에, 거기에 장식 같은 것은 사치 이전에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가장 큰 불만은 역시 음식입니다. 맛있다 없다를 따지기 이전에, 가짓수가 조금이라도 더 다양했으면 하는 게 제 불만인 겁니다. 신기술로 만들어진 ‘광합성만으로 생존에 필요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만드는 음식은 한 가지 맛에 한 가지 모양새 뿐입니다. 다양한 변주가 없단 말입니다. 시스템의 구조를 안다면 어떻게든 개조라도 해 보겠지만, 자세한 설명을 듣고도 이건 애초에 이해가 불가능한 구조의 물건이었습니다.


 

  지구에 회색 구름이 덮인 뒤에, 이상하게도 제가 살고 있는 우주가 너무 갑갑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만약 다른 이들과의 전파 교류가 있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도 금방 미치고 말았을 겁니다. 저는 그 때문에 경제학자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통신이 끊기고 1개월 뒤, 거의 미치기 직전에 들려온 그의 전파 너머의 목소리에 저는 그만 막 울어버렸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갑갑한 우주 정거장 너머에 누군가 아직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것이 그렇게 소중한 것이리라고는,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겁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드디어 관측자 씨와 통신을 했습니다. 점심 때의 전파 송신을 받은 뒤에 제가 바로 연락을 취한 겁니다. 여보세요. 혹시 관측자 씨, 거기 계신가요? 제 조심스러운 첫마디에 조금 있다가 반응이 왔습니다. 허어, 이건 막내 목소리 아닌가. 멀쩡히 잘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목소리로 들으니 과연 반가운데. 관측자 씨는 여전히 낡은 듯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았습니다. 관측자 씨는 지상의 섬광을 관측하면서 지상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계속 추측해 본 모양이었습니다.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냐. 그는 자신의 추측을 들려달라는 제 말에 그렇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하다가 우연히 먹을 것에 대한 불평을 입에 담았습니다. 먹을 게 언제나 똑같아서 너무 지루해요. 기계의 구조라도 안다면 조금이라도 손 보고 싶을 정도에요. 관측자 씨가 말했습니다. 그건 그만두는 게 좋아. 나도 웬만한 기계에 대한 것은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저 음식 만드는 시스템만은 전혀 그 구조를 모르겠어. 솔직히 그 말에 무척 놀랐습니다. 우주 공간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기계를 잘 안다고 알려진 관측자 씨가 저런 말을 할 정도라는 것 때문에 말이죠.

 


  혹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 관측자 씨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스 희곡에 나오는 건데, 그냥 놔둘 경우 도저히 설명하거나 해결하기 불가능한 일을 바로잡기 위해 등장하는 신을 가리키는 말이지. 그 신이 하는 일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게 아니고, 흐름을 방해하는 것들을 정리해 줘서 제 갈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다지. 저 기계도 그런 의미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닐까. 저 기계 때문에 우리들은 우주에서 음식을 구할, 먹고 살 걱정을 하는 수고를 덜게 되니 말이야. 나도 처음엔 저 음식 만드는 기계의 구조를 알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지금은 포기했어. 그것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그 기계 때문에 우주에서 계속 생존이 가능하다는 데 의의를 두고 다른 할 일을 할 생각이다. 막내야, 너도 그 기계에 신경쓸 시간에 다른 할 것을 찾아보는 게 더 좋을 거라 본다.

 


  이 기록을 남기면서도 저는 생각해 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하지만 그 말을 곱씹으면서, 저는 조금 다른 의미를 떠올립니다. 분명 저 단어의 뜻은 ‘기계장치의 신’일 겁니다. 기계장치의 신. 저 멀리서 인간들의 혼란함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개입하기 전까지는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존재. 자신이 원할 때 개입할 수 있는 편리한 존재. 정말 그런 게 존재하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관측자 씨가 지나가듯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저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뭔가 큰 일이 있지 않고서야 우리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을 리 없는데. 관측자 씨의 말투는 관제탑이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저 두꺼운 회색 구름을 뚫고 우리들에게 연락을 할 거라는 듯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일상처럼 지겨워져서 잊고 있었지만, 저 ‘환희의 송가’도 관제탑에서 보내오는 것이었네요.

 


  설마 이 지겨운 ‘환희의 송가’를 보내오는 것은 컴퓨터가 아니라 관제탑의 사람들인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왜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는 걸까요? 왜 똑같은 노래의 똑같은 부분만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걸까요? 도대체 왜?

 


  왠지 더 이상 상상하면 너무 무서워질 거 같아서, 일단 여기서 오늘의 기록을 끝내려 합니다. 저 회색 구름 아래로 눈이 잔뜩 내려서 저 구름이 모두 사라진다면, 그때에는 진실을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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