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59일 - 잉여로움과 전체주의 (사숙록)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아렌트는 '폭민'(mob, 暴民)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폭민은 사전적으로 '조직되지 않은 거대한 폭력적 군중'을 의미한다.
  폭민은 기존의 사회계급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계급과 국가, 어떤 공동체에도 속하지 않는 조직되지 않은 잉여 집단이다. 자본주의는 잉여자본과 잉여 인간을 발생시켰는데, 제국주의가 잉여자본의 조직이라면 전체주의는 잉여 인간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들이 포착하지 못했던 사실은, 폭민은 성장하는 산업 노동자와도 또 더욱 분명하게는 국민 전체와도 동일시될 수 없으며, 실제로 모든 계급의 폐물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조직하여 공허한 소속감과 정체성을 부여할 지도자를 기다린다. 이렇게 전체주의 정권은 탄생한 것이다.
  전체주의는 간단히 말해 폭민의 정권이다. "인간을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전체주의의 시도는 과잉 인구로 시달리는 지구에서 자신들이 별 쓸모없다는 것을 알게 된 현대 대중의 경험을 반영한다." 전체주의 정권은 이들에게 개인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대신 역사적 운동의 주체라는 허위의식을 심어준다. 그들은 거대한 운동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인격과 개성을 희생한다. "나치가 자연법을 말하고 볼셰비키가 역사의 법을 이야기할 때, 여기서 자연이나 역사는 죽을 운명을 가진 인간의 행위에 권위를 부여하는 안정적인 근원이 아니다. 자연과 역사는 그 자체가 운동이다." 이 운동이 강조되고 절대화될 때 모든 개인의 유일무이한 개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처럼 전체주의 정권은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들을 마치 모든 인간이 하나의 개인인 것처럼 조직한다. 인간의 세계를 구성하는 복수의 대원성은 사라지고 단수의 획일성만이 존재한다. 개인들은 전체주의 운동의 도구가 되어 한 사람(One Man)이 된다. 대중들이 똑같은 의견을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동일하게 행동할 때, 그들은 전체주의의 폭민이 된다. 전체주의 국가의 모범적인 시민-아렌트가 선명한 언어로 말하는 것처럼-은 "파블로프의 개"이고 "가장 기초적인 반작용으로 축소된 인간 표본"이다. 그들은 행위 대신 반응을 할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양성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면 언제든지 전체주의가 태동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테러는 서로 고립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절대적 지배를 행사할 수 있다. 대중들이 가치와 원칙으로 서로 연대하지 않고 고립될 때에만 그들을 조직하려는 전체주의 정권이 나타날 수 있다. 세계 속에 어떤 자리도 없는 '남아도는' 사람들은 전체주의 정권의 희생자가 된다.

'전체주의와 '정치적 자유'의 의미', 이진우, <전체주의의 기원 1> 26~27쪽, 한나 아렌트, 한길사

  이 글은 한나 아렌트의 책 앞에 붙은 해제를 인용했다. 본문도 훌륭하지만 이 해제의 이 부분에서 생각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의 자신이 '잉여'임을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부류의 등장을 지켜보면서, 저들의 행위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위 글을 읽고 나서는 그러한 '잉여로움'이 '입진보'나 '넷우익'의 형성 이유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들의 앞에서 '역사적 소명'을 이야기하는 세력은 딱히 등장하지 않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한 구미 당기는 말을 하는 사람이 나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은근히 걱정이 된다. "그들은 행위 대신 반응을 할 뿐이다."라는 말에서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본문을 길게 인용했으므로 더 이상은 쓰지 않겠다.


덧글

  • 쉬르크프 2011/12/01 01:57 # 답글

    안녕하세요^^
    이웃 추가하겠습니다~
  • 무경 2011/12/01 01:58 #

    방문해 주셔서, 그리고 이웃 추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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