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66일 - 지금 그 자리에 필요한 사람 (사숙록)

  그러나 독일통일과 헬무트 콜을 이야기할 때 우선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은 그의 비전이 아니다. 그만이 독일국민들의 뛰는 맥박소리를 들었다. 그만이 동독주민들 속에 잠재한 통일의 열망을 읽었다. 그 열망을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정치적 힘으로 승화시킨 것은 그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역사에 정통하고 국민들과 함께 호흡한 대중정치인으로서 콜은 길거리 정치의 흐름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이 있었다. 호네커가 그처럼 완고하지 않아 좀 더 빨리 움직였더라면, 크렌츠가 정치적으로 보다 능숙했더라면, 모드로프가 등장한 시기가 조금만 빨랐더라면 콜은 동독주민들의 희망을 이끌고 나갈 기회를 잡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바스티유 감옥으로의 행진처럼 독일통일의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했다. 동독정권의 무능에 절망하고 독재에 분노한 남녀들의 대탈주. 그러나 그 절망과 분노에 방향성을 부여하고 이를 통일로 이끈 것은 콜이었다.

<독일통일과 유럽의 변환> 486쪽, 필립 젤리코, 콘돌리자 라이스, 모음북스

  일의 전환점은 무척 미묘한 갈등과 큰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일종의 '복마전'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때 그 전환점을 대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다음의 일이 새로운 도약 혹은 파국으로 갈리는 듯 하다. 독일 통일에 대한 위 연구에서는 서독과 동독의 통일이라는 과정과 그것을 둘러싼 독일 국내외적인 갈등 속에서 헬무트 콜이라는 정치인의 역할이 컸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런 유능한 자가 계속해서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는 말은 유능한 자가 계속해서 혼자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정당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 사견은,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우리가 지킨다면, 그 시기에 맞는 사람을 바로 대표자로 내세울 수 있는 유연하고 활동적인 순환적인 움직임이 바람직한 민주주의의 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본다. 독일 통일에서 헬무트 콜이 그 자리에 있었기에 통일이 지금과 같이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나의 이러한 생각은 아직 무르익지 않아서 허술한 감상에 불과한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