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95일 - 나의 책 읽는 습관에 대해

  두 사람은 음악 이야기를 했다. 스미레는 클래식 음악 팬으로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레코드 컬렉션을 찾아 들었다. 음악에 대한 두 사람의 기호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양쪽 모두 피아노 음악을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베토벤 소나타 32번을 음악사상 가장 중요한 피아노 음악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빌헬름 박하우스가 데카에 남긴 녹음은 그 기준이 될 만한 해석이고 비교할 대상이 없는 훌륭한 연주라고 믿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나 즐겁고 생동감이 넘치는 연주인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모노럴 녹음 시대의 쇼팽은, 특히 스케르초는 그야말로 스릴이 넘친다. 프리드리히 굴다가 치는 드뷔시 전주곡집은 유머가 넘치고 아름다우며, 기제킹이 연주하는 그리그는 사랑스러웠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의 프로코피예프 연주는 그 사려 깊은 유보와 순간적인 조형의 뛰어난 깊이 때문에 어떤 것이라도 주의 깊게 들을 가치가 있었다. 반다 란도프스카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온화하고 섬세한 배려에 가득 차 있는데 어째서 과소평가받고 있는 것일까.

<스푸트니크의 연인> 37쪽,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이 작품을 선택한다. 내가 읽어본 다른 하루키 작품과는 다르게 기묘하게 산만한 구성이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하루키의 대표작이나 최고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약간의 흠이 있는 독특한 맛의 작품이라는 점이 내게 큰 인상을 남긴 듯 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강렬한 도입부를 꼽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위 부분을 선택했다. 이 부분을 선택한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 대목을 읽을 때에는 그저 두 사람의 취향이 일치하는구나, 라는 정도로만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은, 저 표현에서 연주자와 음악가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그 연주들, 혹은 그와 유사한 연주들이 귓가를 맴돈다. 그렇게 나는 이 소설을 몇 년마다 새로이 읽으면서 새로운 부분에 공감을 하게 되었다.
  나는 한 번 읽은 책을 웬만하면 다시 읽곤 한다. 처음엔 보지 못했던 부분이 새로이 다가오는 경험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러한 감각 때문에, 나는 책에 줄을 치거나 메모하며 읽지도 않는다. 줄을 치고 메모를 하면 그 때의 생각이나 감정이 거기에 박제되고, 다음번 읽을 때 그 생각과 느낌을 따라가는 독서를 하고 말기 때문이다. 내 독서에 대한 지론을 설명하기에 가장 좋은 구절이 위 글일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사소하게 길어졌다.

by 무경 | 2012/01/02 14:19 | (사숙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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